강제된 정적, 그리고 존재의 메커니즘
시스템 종료컴퓨터가 고장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파워 서플라이가 멈춰버렸다. 매일 반복해왔던 패턴이 일순간 무너져 내렸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버리다니. 사실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스마트폰과 태블릿까지 멈춘 건 아니었다. 나는 즉시 그 둘을 집어 들고, 컴퓨터가 점유했던 시간만큼 다시 채워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먼저 시야를 사로잡은 것은, 몇 개월째 책상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책들의 시선이었다. 책등들은 모두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빛에 시선을 빼앗겨,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조용한 시선들이었다.
1. 무색무취의 고요함
최근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꽤 느낌이 좋다. 적게 먹으니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 줄었고,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마치 체내에 쌓인 어떤 독소로부터 점점 해독(Detox)되는 기분이다.
지금 방 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떠한 영상도 재생되지 않는다. 시각과 청각의 다이어트를 사실상 반강제로 하게 된 셈이다. 귀에 들려오던 소음, 눈을 온갖 색으로 물들이던 디지털 독소들이 점점 옅어진다.
지금, 매우 편안하다.
2. 정적(Silence)
방에는 완벽한 정적이 흘렀다. 이 공간에는 온전히 나 자신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적적함이 낯설고 어색했다. 그래서 습관처럼 재빨리 음악을 틀었다. 익숙한 소음이 내 귀를 가득 채웠고, 그 소음들은 내 안에서 울리는 무언가를 잠깐 진정시키는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음들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어폰을 귀에서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다시금 이 방에는 고요한 침묵만이 남았다. 동시에 나의 호흡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존재하고 있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덩그러니.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 그냥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
3. 나를 보는 시간
보통 평소에는 밖에 있는 무언가를 보는 것에 나의 시간 대부분을 할애한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보는 시간이다. 말 그대로 나, 나의 존재를 느끼는 시간이다.
나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서 12년 전 구매한 낡은 메모장에 글을 쓰고 있다. 이 행위가 어떤 거창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메모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그런 욕망이 강렬하게 들었을 뿐이다. 빈 메모지의 여백들에 내 안의 것들을 빼곡하게 채우고 싶은 욕망. 이 메모지는 12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누군가에 의해 비로소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3.1. 존재의 의의
한때, 나의 존재 의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사람마다 그 답은 다르겠지만, 당시의 나는 나 자신이 납득할만한 답을 찾지 못했다.
헌데, 지금은 어렴풋이 느껴진다. 내가 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태어남의 의의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뭘 원하는지에 대한 것은, 적어도 존재 이유에 비해선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그것은 다이어트일 수도, 맛있는 식사일 수도 있다. 혹은 치열한 삶일 수도, 과감한 포기일 수도 있다. 이쪽일 수도, 저쪽일 수도, 혹은 이도 저도 아닐 수도 있음을 느꼈다.
4. 경계선이 없는 삶
얼마나 이건 맞고, 이건 틀림이라는 이분법에 휘둘리며 살아왔던가? 애초부터 맞는 것은 없었다. 물론 틀린 것도 없었다. 단지 내가 느끼는 게 있고, 내가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블로그 글을 계속 쓸 수도, 이대로 방치할 수도 있었다. ‘과연, 무엇이 정답이냐?‘에 대한 건 아무래도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이 행위가 정답처럼 느끼고, 저 행위가 오답처럼 느끼거나, 아니면 잘 모르겠다고 느낄 뿐이다.
그것뿐이다. 동시에 그것이 전부다.
5. 객관적 메커니즘
지금 나의 오른손에는 제트스트림 0.7mm 볼펜이 들려 있다. 이걸 손에서 놓으면 펜은 중력에 의해 손에서 밀려나 메모장 위에 덩그러니 떨어지게 된다. 내가 이 펜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손에 힘을 빼선 안 된다. 반대로 펜을 놓고 싶으면 힘을 빼서, 펜을 놓아버리면 된다.
이 단순한 메커니즘1은 물리법칙의 개념을 넘어 삶의 여러 곳에서도 적용된다. 사실 놀라울 것도 없는 말이다.
5.1. 메커니즘의 비극
하지만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 메커니즘의 법칙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여기, 살을 빼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는 현재 비만이다. 그는 먹는 것을 선호한다. 매우. 그래서 비만이 되었다. 그에게는 살을 빼고 싶은 마음과 많이 먹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비극의 시작여기서 메커니즘의 비극이 일어난다. 바로 양립 불가능이다.
이 두 가지 마음, 아니 욕구는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기 바쁘다. 이 메커니즘 앞에서 인간은 절망한다. 한 쪽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고, 반드시 한 쪽을 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매번 절망한다.
인간은 결국 이런 메커니즘에 속박된 노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인간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진다. 어느 쪽도 100% 만족스러울 수 없다. 선택을 피할 수도 없다. 여기서 인간은 너무나 무력하다. 너무나도.
6. 딜레마와 인간의 선택
사람은 매일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그냥 하는 것도 있다. 사실 꽤 많다. 가장 원초적인 예로 배뇨 활동이 있다. 인간은 화장실에 갈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기로에 놓인다. 하지만 매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이런 선택지를 심각하게 의식하지 않는다. 그냥, 화장실을 가거나 참아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냥은 매우 개인적이며 자발적인 단어다. 이게 시사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많이 먹으면 살이 찌는 걸 받아들인다. 살을 빼고 싶다면 적게 먹어야 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이런 부조리2한 메커니즘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6.1. 딜레마 직시
인간은 인과율(Causality)3 혹은 필연적 부조리 메커니즘과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메커니즘을 극복하거나 초월하라는 것이 아니다. 결과(책임)를 아는 것이다.
많이 먹었다면 살이 찔 수밖에 없다는 조건을 받아들인다.
“메커니즘을 바꿀 수 없지만, 그 메커니즘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결정할 수 있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 속 사막과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 속 모래 구덩이를 비교하며,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실존적 자유를 획득하는지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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