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4
9 분 / 1840 단어

부조리의 언덕 위에서: 시지프의 돌과 불꽃

1. 서론: 왜 우리는 돌을 굴리는가?

새벽 6시의 알람 소리는 현대판 형벌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와 같다. 우리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씻고, 옷을 입고,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회사나 학교에 도착하면 쏟아지는 업무와 과제들, 끊임없는 경쟁과 평가. 하루 종일 무언가를 쌓아 올리지만, 퇴근길에 돌아보면 그 모든 것이 내일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 같은 허무함을 느낀다.

이 반복되는 일상은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Sisyphus)1의 형벌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신들을 기만했던 시지프는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온 힘을 다해 정상에 올려놓으면, 바위는 그 무게 때문에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시지프는 다시 내려가 그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 영원히. 끝없이.

알베르 카뮈(Albert Camus)2는 그의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이 비극적인 영웅을 소환하여 우리에게 묻는다. 이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자살하지 않고 계속 살아가야 할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이 글은 카뮈가 제시한 ‘부조리(Absurdity)‘3의 개념을 통해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어떻게 우리만의 불꽃을 태우며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긴 사색의 기록이다.


2. 부조리의 벽에 부딪히다

2.1. 합리성을 갈구하는 인간, 침묵하는 세계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란 단순히 말이 안 되는 상황이나 불합리한 대우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관계의 단절에서 온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세상이 명확한 인과관계와 의미로 가득 차 있기를 바란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겠지, 노력하면 성공하겠지, 이 고통에는 분명 신의 뜻이 있겠지. 우리는 끊임없이 ‘왜(Why)‘를 묻고 세상으로부터 대답을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계는 철저히 침묵한다. 착한 사람이 병에 걸려 죽고, 악한 사람이 부귀영화를 누리기도 한다. 우주는 우리의 도덕이나 바람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 의미를 찾는 인간의 호소비합리적인 세계의 침묵 사이의 대립. 이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바로 부조리다.

2.2. 일상의 붕괴

어느 날 문득, 밥을 먹다가, 혹은 길을 걷다가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라는 물음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가 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을 내일.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무대 장치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이것이 부조리의 각성이다. 이때 우리는 두 가지 갈림길에 선다. 하나는 희망이나 종교 같은 형이상학적 위로로 도피하는 것(카뮈는 이를 철학적 자살4이라 불렀다). 다른 하나는 육체적 자살이다. 카뮈는 이 둘 다 거부한다. 그는 제3의 길, 즉 반항을 제안한다.


3. 반항하는 인간: 바위보다 강한 의식

3.1. 내려오는 순간의 승리

시지프가 가장 비극적인 순간은 언제인가? 바위를 밀어 올릴 때의 육체적 고통일까? 아니다. 바위가 굴러떨어진 후, 다시 그 바위를 가지러 터벅터벅 산을 내려오는 그 짧은 휴식의 시간이다. 그 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을 직시한다. 아, 나는 영원히 이 짓을 해야 하는구나.

3.1.1. 의식의 명료함

하지만 카뮈는 바로 그 순간에 시지프가 승리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운명이 비극적임을 알고(Consciousness)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다시 바위를 향해 걸어가기 때문이다.

3.1.2. 운명애 (Amor Fati)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운명은 더 이상 신들이 내린 형벌이 아니라 인간의 일이 된다. 니체의 운명애5와 닿아 있는 지점이다.

바위가 승리하는 순간마다, 의식은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4. 결론: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하며

카뮈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산봉우리를 향한 투쟁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우리의 삶에 완성은 없을지도 모른다. 버그는 계속 나올 것이고, 새로운 기술은 쏟아질 것이며, 통장 잔고는 오르락내리락할 것이다. 하지만 그 불확실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사색에 잠긴다.

그 반복되는 행위 속에 우리가 부여한 의미가 있고, 뜨거운 열정이 있다면, 우리는 그저 형벌을 받는 죄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사랑(Amor Fati)하는 주인이 된다.

돌은 또 굴러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웃으며 다시 내려갈 것이다. 그 내려가는 발걸음마다 우리의 불꽃은 더욱 붉고 선명하게 타오를 테니까.


Footnotes
  1. 시지프(Sisyphus):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신들을 기만한 죄로 커다란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바위는 정상에 닿자마자 다시 굴러떨어지며, 이 행위는 영원히 반복된다.

  2.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부조리 문학의 대표 주자이며, 『이방인』, 『페스트』 등의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3. 부조리(Absurdity): 인간은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찾으려 하지만, 세계는 그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에서 오는 근본적인 모순 상태.

  4. 철학적 자살: 부조리를 직시하지 않고, 신이나 내세, 영원한 진리 같은 초월적 희망에 기대어 현실의 부조리를 잊으려는 태도. 키르케고르의 신앙으로의 도약 등을 비판하며 사용한 용어다.

  5.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運命愛)‘로 번역된다. 자신의 운명이 필연적인 것임을 긍정하고, 그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니체의 핵심 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