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라는 모래 속에서 추는 춤: 『모래의 여자』와 실존적 적응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와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는 전혀 다른 배경과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놀랍도록 유사한 질감의 공간을 공유한다. 그것은 바로 사막과 모래다. 이 글에서는 특히 아베 코보가 묘사한 모래의 물리적, 실존적 속성에 집중하여, 인간이 부조리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고 끝내 자유를 얻는지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1. 곤충학자의 오만: 대상화된 사막
『모래의 여자』의 주인공 니키 준페이1는 곤충 채집을 위해 사막(모래땅)으로 향한다. 소설 초반부, 그는 사막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기회의 땅으로 여긴다.
1.1. 적응에 대한 생물학적 오해
변종이 많다는 것은 바꿔 말해 그만큼 적응을 잘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 점을 발견하고 그는 춤을 출 듯 기뻐했다. 나도 제법인데, 적응력이 강하다는 것은 다른 곤충이 살지 못할 나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모든 생물이 죽어 사라지는 사막 같은 곳에서도⋯⋯. (16쪽)
1.1.1. 주체와 객체의 분리
여기서 준페이가 말하는 적응은 철저히 생물학적이고 기능적인 차원이다. 그는 자신을 관찰자(주체)로, 사막과 곤충을 관찰 대상(객체)으로 분리한다. 그는 자신이 사막이라는 환경을 통제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현대 문명인이 가진 전형적인 오만이다.
1.2. 고정된 정의의 함정
그는 모래를 과학적으로 정의 내리며 안도감을 느낀다.
모래란 부서진 암석 중에서 자갈과 점토 중간에 있는 물질이다. 그러나 단순히 중간 물질이라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설명이라고 하기 어렵다. (18쪽)
1.2.1. 유동성의 간과
그는 모래를 중간 물질 정도로 파악했지만, 그가 간과한 것은 모래의 유동성이었다. 정의 내릴 수 있고 멈춰 있는 세계는 안전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흐르고, 무너지고, 모든 형태를 지워버리는 모래의 진짜 속성을 그는 구덩이에 갇히고 나서야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2. 모래의 유동성: 정착과 소유의 해체
흥미로운 점은, 준페이가 모래에 갇히기 전에는 모래의 그 파괴적 유동성을 오히려 예찬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사회가 강요하는 정착에 지쳐 있었고, 모래야말로 그 답답한 현실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1. 경쟁과 소유로부터의 해방
모래란 말입니다, 이렇게, 일 년 365일 움직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동이 바로 모래의 생명이란 말이죠⋯⋯ 절대로 한곳에 머물지 않는⋯⋯ 물속에서도 공기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래서, 살아 있는 생물은 보통 모래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거라고요⋯⋯. (31쪽)
물론 모래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착은 과연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인가. 정착을 부득불 고집하기 때문에 저 끔찍스런 경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정착을 포기하고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다면 경쟁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19쪽)
2.1.1. 소유가 낳은 비극
준페이는 정착을 끔찍스런 경쟁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우리가 어딘가에 뿌리내리려 하는 순간, 땅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된다. 즉, 소유에 대한 집착이 경쟁을 낳는다. 반면 모래는 그 어떤 소유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흘러가게 만든다.
2.2. 형태의 파괴와 무형의 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자유라고 믿었던 그 유동성이, 구덩이에 갇히는 순간 가장 잔혹한 감옥이 된다.
이미 집은 죽어 가고 있다⋯⋯. 끊임없이 흐르는 모래의 촉수가 내장의 거의 절반을 파먹었다⋯⋯. 평균 1/8mm란 것 외에는 형태조차 제대로 갖고 있지 않은 모래⋯⋯. 그러나 이 무형의 파괴력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무엇 하나 없다⋯⋯. 어쩌면,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힘의 절대적인 표현이 아닐까⋯⋯. (35쪽)
2.2.1. 해체와의 공존
인간은 끊임없이 형태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여 그것을 유지(소유)하려 한다. 그것이 집이든, 사회적 지위든, 자아 정체성이든 말이다. 그러나 모래는 그 모든 형태를 무참히 해체하여 허망한 것으로 되돌려놓는다.
모래 쪽에서 생각하면 형태가 있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 확실한 것은 오로지 모든 형태를 부정하는 모래의 유동뿐이다. ~ 집이란 고정 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모래와의 덧없는 투쟁에 힘을 소모할 필요도 없다. (45쪽)
이 대목에서 우리는 중요한 통찰을 얻는다. 인간은 형태뿐만 아니라 해체와도 더불어 살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3. 부조리의 벽과 실존적 대면
모래 구멍 속에는 거리도 방향도 없다. (79쪽)
3.1. 의미 해체의 경험
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들 무종교라고 대답하지만 종교를 떠나, 누구나 자신이 믿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상실된다면? 그때부터는 어떻게 될까?
부조리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의미 해체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죽음의 경험이다. 혹은 모호해짐이다.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이 이젠 이렇다 할 수 없는 것으로 변질되었을 때. 이것이라 하기도 저것이라 하기도 애매한 것이 된 그것. 사랑했던 이의 죽음처럼 부조리의 경험도 이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느낌으로 표현하자면 의미 상실감, 이것이 바로 부조리의 감정이다. 모든 것이 해체된다. 흩어진다. 희미해진다.
조여들듯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래 벽을 보고 있노라면, 아까 기어오르려다 떠밀려 났던 비참한 실패가 떠오르고 만다⋯⋯. 몸부림만 칠 뿐이지 아무 효과도 없다는, 전신을 마비시키는 무력감⋯⋯. 이 곳은 이미 모래에 침식되어 일상적인 약속 따위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특별한 세계인지도 모른다⋯⋯. (54쪽)
3.1.1. 탈출이라는 최선책
이 턱턱 막히는 무의미의 사막에서 숨 쉬는 것은 버겁다. 그래서 다들 이곳을 탈출하려 한다. 사막에서 산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3.2. 무의미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서야 상대방이 계획한 각본대로 움직이고 마는 꼴이 아닌가. 상대방도 그렇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벌이란 죗값을 치르도록 인정하는 행위나 다름없으니까. (54쪽)
3.2.1. 무(無)를 끌어안기
우리는 흔히 무의미하고 헛된 것을 잘못된 것이나 벌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무의미는 잘못이 아니다. 무의미라는 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도 엄연히 존재한다. 특이하게도 삶의 어떠한 가치나 의미도 없음을 알면서도, 그 무(無)를 끌어안고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4. 결론: 내 안의 유수 장치와 불꽃
소설의 결말에서 준페이는 변화한다. 그는 우연히 모래 속에서 물을 얻는 원리(유수 장치2)를 발견하고, 탈출할 기회를 얻었음에도 탈출하지 않는다.
도주로라면 나중에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
4.1. 불꽃을 발견한 변종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결국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의 가치(의미)는 무엇인가? 나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사막에서 살기 위해서는 자신 안에서의 물을 찾아야만 한다. 자신만의 유수 장치를 발견한 자만이 마침내 사막에서 적응해 변종으로 살아갈 수 있다.
4.1.1. 확실한 뜨거움
나에게 그 대답은 불꽃이다. 비록 남루하고 허름할지라도, 내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이 뜨거움. 이 불꽃이 무의미의 추위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요소다.
4.2. 승리의 춤
이 지점에서 준페이는 카뮈의 시지프와 만난다. 무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웃음과 함께 몸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영문 모를 춤을 추기 시작한다. 웃을 상황도 춤을 출 상황도 아니지만, 춤을 추며 웃고 있다.
4.2.1. 극한의 승리감
그것은 극한의 승리감이다. 신이 내린 이 절망적인 벌에도 불구하고 나의 내면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쁨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돌은 또 굴러떨어지겠지만, 우리는 그 위에서 가장 뜨거운 춤을 출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통해 바라본 현대인의 실존적 반항과 무의미 속에서 피어나는 진정한 자유에 대한 고찰.

컴퓨터 고장으로 마주한 예기치 못한 정적 속에서, 존재의 실존적 의미와 인간 욕망의 필연적 메커니즘을 고찰한 에세이.
2025년 8~11월 다이어트 기록: 1일 1식과 단식을 통한 체중 변화, 폭식과 참회의 경험 일지.
2025년 3~7월 다이어트 기록: 1일 1식과 식사·수면 패턴 정형화를 통한 체중 감량 일지.
